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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선방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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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禪房의 生態




禪房의 生態


十월 二十일 선방의 구성원은 극히 복합적이다. 실제적인 이질성과 내용적인 다양성이 매우 뚜렷하다. 먼저 연령을 살펴보면 十六세의 紅顔으로 부터 고희(古稀)의 老顔에까지 이른다.

세대적으로 격(隔)이 三대에 이른다. 물론 世壽와 법랍(法蠟 : 중이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과는 동일하지 않지만.

다음에 출신 고장을 살펴보면 八道 출신들이 제각기 제고장의 독특한 방언을 잊지 않고 수구초심(首邱初心 : 고향을 잊지

않음) 에 가끔 젖는다. 대부분의 북방 출신들은 老 壯年層이다.

학력별로 살펴보면 사회적인 학력에서는 교문을 밟아보지 못했는가 하면, 대학원 출신까지 있다. 불교적인

학력(講院學習)에서는 初發心自警文도 이수치 않았는가하면 大敎를 마치고 經藏에 통달한 大家도 있다.

다음으로 출신 문벌로 보면 재상가(宰相家)의 자제가 있는가하면 비복(婢僕)의 자제도 있다. 물론 선방에서는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도 문제될 바 아니지만 그래도 견성하지 못한 중생들인지라 유유상종(類類相從)은 어쩔수 없어 휴게시간에는

끼리끼리 자리를 같이 함을 볼 수 있다. 내분이나 갈등이 우려되지만 출가인들이어서 그 점은 오히려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간과(看過)할 수 없는 사실은 출신성분이 다른 모임이긴 하지만 전체가 무시되고 개인이 위주가 된다는 점이다.

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처음도 自我요, 마지막도 자아다. 수단도 자아요, 목적도 자아다. 견성하지 못하고서 大我를

말함은 迷妄이요 위선일 뿐이다.

철저한 자기본위의 생활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극히 비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비정한 자기본위의 생활에 틈이 생기거나 흠결이 생기면 修道란 끝장을 알리면서 선객은 태타(怠惰)에 사로잡힌 무위도식배가 되고 만다. 자기자신에게 철저하게

비정할수록 견성의 길은 열려지는 것이다. 전후 좌우 상고하찰(上顧下察)해보아도 견성은 끝내 혼돈된 자아로부터 출발하여 조화된 자아에서 멈춰질 수밖에 없다. 견성은 끝내 자아의 분방한 연역(演繹)에서 적료(寂廖)한 자아로 귀납(歸納)되어야

한다. 비정 속에서 비정을 씹으면서도 끝내 비정을 낳지 않으려는 몸부림, 생명을 걸고 생명을 찾으려는 비정한 영혼의

력(모험)이 바로 선객들의 상태다.

진실로 利他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利己적이어야 할 뿐이다. 모순의 극한에는 조화가 있기 때문일까.

十월 二十일 선방에 전래되는 생활규범이 있으니 그것은 頭凉 足煖 腹八分 (머리는 시원하게 발은 따뜻하게 배는 滿腹에서 二分이 모자라는 팔분)이다. 衣食住의 간소한 생활을 표현한 극치이다.

선방에는 이불이 없다. 좌선할 때 깔고 앉는 방석으로 발만 덮고 잠을 잔다. 그래서 선객의 要品중의 하나가 바로 방석이다. 이주할 때에는 바랑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선방의 하루 급식량은 주식이 일인당 세홉이다. 아침에는 조죽(朝粥)이라 하여 죽을 먹고 점심에는 午供이라 하여 쌀밥을

먹고 저녁에는 약석(藥石)이라하여 잡곡밥을 약간 먹는다. 부식은 채소류가 위주고 가끔 특식으로 콩을 원료로 한 두부와 김과 미역이 보름달을 보듯 맛볼 수 있다.

선객이 일년에 소비하는 물적인 소요량은 다음과 같다.

주식비 3홉 365일 = 1,095홉

1,095홉 x 15원 = 16,425원

부식 및 잡곡은 자급자족

피복비 僧服 광목 20마 x 50원 = 1,000원

내복 1,500원

신발 고무신 2족 x 120원 = 240원

합계 2만원이면 족하다. 그래서 선객은 모름지기 "三不足"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있다. 食不足

依不足 睡不足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추태는 갖가지 욕망의 추구에서 비롯 되는데 욕망에서 해방은 되지 못했으나 외면만이라도 하고 있다는것 때문에

세속의 七十노파가 산문의 홍안납자(紅顔衲子)에게 먼저 합장하고 고개 숙이는가 보다.

그러나 잘 따지고 보면 납자는 철저하게 욕망의 포로가 되어 전전긍긍한다. 세속인들이야 감히 엄두도 못낼뿐더러

생사문제까지 의탁해버린 부처가되겠다는 대욕(大欲)에 사로잡혀 심산유곡을 배회하면서 면벽불(面劈佛)이 되어 스스로가

정신과 육체에서 고혈(膏血)을 착취하는 고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無欲은 大欲때문 일까.

선객은 스스로가 인간은 끝내 견성하지 않으면 안될 고집의 존재임을 자각하고 스스로 苦의 땅위에 苦의 집을 짓고 苦로써 울타리를 치고 苦의 옷을 입고 苦를 먹고 苦의 멍에를 쓰고 苦에 포용된 채 苦의 조임을 받아가면서도 苦를 넘어서려는

의지만을 붙들고 살아간다. 만약 이 의지를 놓친다면 그때는 생의 모독자가 되고 배반자가 된채 암흑의 종말을 고할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운명적으로 붙들 수 밖에 없다.

선객은 숙명의 소산이 아니라 운명의 所造이다. 숙명은 자기 이전에 던져진 의지와 주어진 질서여서 생래적으로 어쩔수 없는 선천적인 사실이지만 운명은 자기자신의 의지와 자유로이 선택한 후천적인 현실이다. 그래서 숙명은 필연이지만 운명은

당위(當爲)요, 숙명이 불변이라면 운명은 가변이요, 숙명이 한계성이라면 운명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내가 甲富의 아들로 태어나지 못하고 거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숙명의 소산이라면 내가 자라서 갑부가 된 것은 운명의

소조이다.

내가 내 품속을 기어다니는 이나 벼룩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숙명의 소치이고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불교에 귀의하고 정진하여 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운명의 소이에서다.

현재의 나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운명의 주체이다. 숙명은 자기 不在의 과거가 관장했지만 운명은 자기 實在의 현재가 그리고 자신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운명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운명(殞命) 직전까지 무한히 열려져 있다.

숙명의 필연성을 인식하면 운명의 당위성을 절감하게 된다.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숙명적인 것을 피하려고 괴로와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며 운명적인 것은 붙잡고 사랑해야 할 뿐이다.

古集의 표상같은 누더기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선객이야 말로 견성의 문턱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끝내 운명은 타기 될 것이 아니라 파지(把持)되어야 함은 선객의 금욕생활이 극한에 이를수록 절감되는 상황때문이다.

十월 三十일 그믐이다. 삭발하고 목욕하고 세탁하는 날이다. 보름과 그믐에는 佛 菩薩이 중생을 제도하는 날이기 때문에

세탁을 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내복을 입어야 하고 내복에는 이따위가 있기 때문에 세탁을 하면 살생을 하는 결과가 된다.

날카롭게 번쩍이는 삭도(削刀)가 두개골을 종횡으로 누비는 것을 바라볼 때는 섬뜩하기도 하지만 내 머리카락이 쓱쓱 밀려내릴 때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바라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때문이다.

겨울철 목욕탕과 세탁장 시설이 협소하니 노스님들에게 양보하고 젊은 스님들은 개울로 나가 얼음을 깨고 세탁을 하고

목욕은 중요한 부분만 간단히 손질하는 것으로 끝낸다. 오후에는 유나(維那)스님의 포살이 행해진다.

三藏(經 律 論)중에서 律藏을 다룬다. 사분율의(四分律儀)에 의해 沙彌 十戒, 比丘 二百五十戒가 나열되고 설명된다.

禪은 원칙적으로 敎外別傳(교설밖에 따로 전함). 直持人心 見性成佛(곧 바로 자신의마음을 통해 자기의 본성을 보아

깨달음). 혹은 不立文字 見性性佛(문자를 세우지 않고 자기의본성을 보아 깨달음)을 외치면서 自性의 悟得을 주장한다.

인위적인 일체의 잡다한 형식을 무시하고 관계를 단절하고 심지어는 佛經까지를 외면한채 오직 화두에 의한 禪理探究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선객은 괴벽하게 보이고 비정하게 느껴진다. 그런 선객들에게 계율을 말하고 보살행을 설파함은

도로(徒努)일 뿐이라는 걸 유나 스님은 잘 알면서도 노파심 때문에 행하고 있고 또 대중들은 듣고 있다. 중생의 모순성

때문인지 모순의 二律性때문인지.

몇몇 스님들은 포살에 참석하기는 하나 유나스님의 開口聲을 마이동풍격으로 처리하면서 자신의 화두에 정진하는가 하면

몇몇 스님들은 아예 밖으로 나가 보행을 하기도한다. 그러면서도 포살을 페지하자는 혁신론을 내세우지 않는 이유는 모든

것은 필연성과 당위성 그리고 우연성까지 곁들인 역사성임에 틀림없으니 내가 견성하지 못하는 한 眞否나 可否可를 판별할 수 없다. 그러니까 두고 보자는 극히 보수적이면서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다.

불교의 諸法從本來 때문일까. 실존철학의 존재는 존재를 존재시키기 위한 존재라는 것 때문일까.

중생세계에서 보면 필요성을 주장하면 이유가 되고 타당성을 주장하면 독선이 될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방관자가 된채

그대로 보고 느끼면서 오직 견성에 매달려 중생계를 탈피하려 한다.

자신이 중생에 머물러 있는 한 모든 판단의 척도가 중생심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佛家에서는 是非는 타부로 여기지만 그러나 시비가 그칠 때가 없으니 역시 중생인지라 어쩔 수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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