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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선방일기.10 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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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이 없길래 구해서 올립니다.

이 글을 쓴 지허스님은 2년인가 후에 입적하셨다고 합니다.

10. 해제 그리고 회자정리


1월 14일


뒷방에서는 바랑 꾸리기에 바쁘다. 내일이면 동안거가 끝나기 때문이다. 나도 바랑을 꾸려 놓았다.


봄이 밀려오는 탓인지 양광이 따사로운 오후다. 지객스님과 같이 빨래터에서 내의를 빨아 널고 양지 쪽에 앉았다. 내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앞선다. 앉을 때도 잠자리도 바로 이웃이었고 며칠 만큼씩 얘기도 나누었던 사이인 탓이다.


지객스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가 스스로를 완성시켜야 한다는데 선방에서의 햇수를 더할수록 알 수 없는 어떤 타의에 그리고 신비에 끌려가는 기분이 가끔 드는데 그게 정상일까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그러나 선객에게 가끔씩 찾아오는 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아함경을 통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 한사람이 독이 묻은 화살을 맞아서 쓰러져 있다고 하자. 친구들은 의사를 부르려고하였으나 그 사람은 먼저 화살은 누가 쏘았는지, 이 화살을 쏜 활은 어떤 모양인지, 그리고 독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등을 알기 전에는 그 화살을 자기의 몸에서 빼내서 치료해서는 안된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사람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그 사실들을 미처 알기 전에 죽고말 것이다.>


형이상학적 문제만 붙잡고 공론에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사람은 죽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유한한가, 무한한가, 또 신이 있는가, 없는가 라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지금 괴로와 하고 있는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부처님 교설의 의취(意趣)입니다. 극히 실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자기의 존재에 있어서 자기의 존재가 문제가 되는 존재'라고 샤르트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타인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존재이며 타인도 나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존재'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원죄란 타인이 있는 세계 중에 내가 태어난 것'이라고. 비정하나마 인간실재의 참된 표현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존재를 문제 삼아야 하고 또 자기 자신이 그 문제를 풀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출발점이며 실존주의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현대의 지식인들이 불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실존주의가 배후세계(背後世界)의 망상(神學)을 거뜬히 파괴하기도 하고 타기했다면서도 신의 율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인간은 무책임하게 던져진 단독자라고 하기 때문이며 (하기야 그들은 아무리 현명해도 중생이기 때문에 인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칠 순 있었지만 수습하고 구원할 수 없을 뿐입니다만), 또 하나의 보다 큰 이유는 근래의 기계문명이 인간을 평균화하고 집단의 한 단위로 화함으로써 인간 실존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백팔번뇌를 지적하면서 열반의 길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님, 인간은 끝내 인간의 범주 내에서 인간의 조건과 같이할 뿐이지 초월하거나 탈피할 수는 없잖을까요?"


"물론이지요. 인간은 초월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완성될 수 있고 인간의 조건은 조화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인간의 완성을 위해 선을 내세웠고 인간은 선을 통하여 완성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선은 신비가 아니고 절대자의 조종을 받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인간완성을 위한 길입니다. 즉 열반으로 이르는 길입니다."


"인간완성을 열반에 귀결시키는데 그렇다면 열반은 현실태(現實態)입니까? 가능태(可能態)입니까?"


"실존주의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현실태로 있는 것이지 가능태로 있는 것은 없다.' 즉 일원론적인 현상인 현실 밖에 없다고 하면서 현상 뒤의 어떤 실재, 어떤 영원한 세계를 말하는 것은 잠꼬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현실에서 인간이 완성될 수 있는 길을 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의 함정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은 생명이 단절된 죽음의 저편에 따로 존재하는 세계를 말함이 아니고 부조리하고 무분별한 실재(백팔번뇌)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조화시킨 생명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의 인식에서 반야를 밝히는 힘이 열반인 것입니다. 이 무여열반은 아집의 색상(色相)에서 해방된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제(眞諦)는 열반이고 속제는 유뮤(有無)입니다. 유무에 얽매임은 현실적인 생사이나 열반에 들어옴은 영겁에 의해 해탈된 것입니다. '열반이란 신없는 신의 세계이며 시여(施興)함이 없는 신의 시여'라고 하일러는 말했습니다. 신없는 세계의 신 이것은 곧 완성된 인간을 의미함이요, 주는자 없이 주어지는 것은 완성된 인간의 내용을 의미합니다."


"완성된 인간이 곧 신이 아닐까요. 그래서 인간의 의식이 가능했던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신이 창조되고 군림했던게 아닐까요?"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동경하고 메시아 재림(再臨)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시일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은 자유없는 꼭둑각시에 불과합니다. 절대자의 괴뢰(傀儡), 신의 노예, 그러한 천국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고통스러워도 자유로운 지옥을 택하겠습니다. 그러한 극락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도망쳐 나와 끝없는 업고의 길을 배회하렵니다."


"극히 인간적이군요."


"불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衆生)으로 시작해서 인간(道人)으로 끝납니다. 부조리한 백팔번뇌의 인간이 조화된 열반에 이르기 까지의 길을 닦아놓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불교니까요."


"좀 더 화두에 충실해야 하겠군요."


"그렇지요. 순간의 생명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어찌 순간인들 화두를 놓을 수가 있습니까. 화두를 놓으면 중생이요, 화두를 잡고 있는 한 열반의 길에 서 있는데....."


저녁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걸어가지만 선객은 내심 그렇게도 무서운 절박감 속에서 살아간다.



1월 15일


해제날이다. 새벽 두시다. 모두들 들뜬 기분이어서 벌써들 일어났다. 도량석을 하는 지전스님의 염불소리가 무척이나 청아하다. 산울림도 청아하다. 신라 대종이 울린다. 무겁고도 은은하다. 산울림도 은은하다.


아침 공양이 끝나자 곧 조실스님의 해제 법문이 시작되었다. 법상에 앉아 주장자를 짚은 조실스님은 언제나 처럼 자비롭다.


"일즉다 다즉일, 색즉시공 공즉시색(一卽多 多卽一, 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불교의 중도(中道)를 표현한 극치다. 중도란 가치의 변증법적인 종합이요 통일이다. 대소와 고저의 가치를 분간하여 자타를 넘어서 크고 높은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여기에 대승의 진리가 잠겨져 있다. 양극에 부딪쳐 상극분(相剋分)에 그치지 않고 더 높고 큰 가치에로 지양 종합하여 나아간다. 중도란 단순한 중간이나 중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궁무진한 불교의 정신에서 다즉일의 진리를 선양하는데 그 본의가 있다. 일즉다이다."


법문의 요지다. 불교의 중도는 역(易)의 태극이나 자사(子思)의 중용(中庸)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에도 상통한다. 상극의 초극이야 말로 진실로 인간의 가장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비로소 인간의 순화, 지상의 정화가 이루어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개인의 마음에 달려있을 뿐이다. 개인의 순정(純淨)한 마음없이 사회의 복지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점심 공양을 일찍 마친 스님들은 가사와 발우를 바랑 속에 넣고 꾸렸다. 사중에서 떠나는 스님들에게 여비조로 천원씩 주어졌다.


회자정리(會者定離)다. 그러나 이자정회(離者定檜)를 기약한 이별이기도 하다. 선객은 어느 선방에서 든지 또 만나게 된다 . 선객으로 있는 한.


나도 바랑을 걸머졌다. 황금색 낙엽길을 밝고 올라왔었는데 은색의 눈길을 밟으며 내려 걸었다. 지객스님과 나란히. 갈 곳이 무척이나 멀어서 일까. 갈 길이 무척이나 바빠서 일까. 반가이 맞이해줄 사람도 곳도 없는데 대부분의 스님들이 걸음발을 빨리하여 우리들을 앞질러 갔다.


지객스님이 물어왔다.


"스님, 어디로 가시렵니까?"


"설악산으로 가렵니다. 그리고 토굴생활을 하렵니다. 권태와 나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입니다. 나태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나태의 온상같은 토굴로 들어가서 권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권태의 표본같은 기계적인 생활을 하렵니다. 견성은 대중처소에서보다 토굴 쪽에서 가능하다것을 저는 믿고 있기때문입니다."


나는 지객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저는 남방으로 갈렵니다. 그리고 선방으로 갈렵니다. 내가 나태해질 때마다 탁마(琢磨)가 필요했고 권태로울 때는 뒷방이 필요했습니다. 뒷방을 들여다 볼때마다 공부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는 월정사 층층계단 밑에서 헤어졌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남방행인 그 스님은 월정사로 들어갔고 나는 월정사를 뒤로 한채 강릉을 향해 계속 걸어 나아갔다.


<선방일기 끝>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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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라님의 댓글

케일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극히 인간적이군요."

"불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衆生)으로 시작해서 인간(道人)으로 끝납니다. 부조리한 백팔번뇌의 인간이 조화된 열반에 이르기 까지의 길을 닦아놓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불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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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님의 댓글

no_profile 눈사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空門과 無常에서 자유를 찾다 간 진정한 무소득 수행자들에게.........
http://www.youtube.com/watch?v=_c13pvTlqRw&list=HL1359199124
(슬픈 안나를 위한 기도,  슬픈 안나를 위해 눈물로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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