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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어떻게 창조론에서 진화론자로 변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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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종의 기원에 대해 극적인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계기는 대영제국 군함 비글호를 타고 떠났던 5년 간의 세계일주 항해였고 그 중에서도 특히 1835년 9월에서 10월까지 5주 동안인 갈라파고스 제도에 머문 일이었다. 다윈 전설은 다윈이 이 짧은 방문기간 동안 진화론으로 유레카 같은 전향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전설과는 달리 전향은 1년 반 뒤 잉글랜드로 돌아올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으며 다윈의 전향을 둘러싼 실제 이야기는 과학이 실제로 어떻게 행해지는지 무엇을 관찰하고 그 관찰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이론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쟁적인 이론을 널리 인정받는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끈질긴 고집이 필요한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있는 동안 다윈은 창조론에 입각해 관찰하고 이해했다. 그러나 이것만큼 중요한 사실은 창조론이 다윈의 관찰과 이해를 가로막기도 했다는 것이다. (생략) 그는 이 외딴 제도에서 만난 새롭고 신기한 생물들을 당시를 지배했던 창조론의 패러다임에 맞추어 해석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창조론은 지구 식물상과 동물상이 곳에 따라 다른 것은 창조의 중심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발견된 의외의 사실들은 이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에 대한 창조론적 해답의 신빙성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의 각 섬은 약 970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본토로부터 도달한 우연한 이주자들이 섬들을 차지한 뒤부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많은 독자적인 종을 진화시켰다. 이런 새로운 종의 진화 가능성을 다윈에게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은 찰스 섬에서 만난 갈라파고스 제도의 부총독 니콜라스 로슨이었다. 로슨은 갈라파고스땅거북들은 섬마다 다르며 자신은 거북을 보면 어느 섬에서 온 것인지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애석하게도 다윈은 처음에는 부총독의 증언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생략) 다윈이 잉글랜드로 돌아온 뒤에야 이들이 별개의 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창조론은 종이 지역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실제로 변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불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특정 유형에서 생겨난 변종들이 보이는 모든 이탈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려고 기를 쓰는 고무줄처럼 이례적인 생태환경적 조건에 의해 당분간 유지되는 일시적인 일탈로 여겨졌다. 다윈은 따라서 갈라파고스 제도에 있는 동안 대형 땅거북들 사이에 나타나는 섬에 따른 차이는 으레 있을 수 있는 현상으로서 외래종 염소가 색깔이나 크기 따위의 특징들에서 섬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 같다. 그러한 지역적 차이는 험난한 새 환경으로 옮겨옴에 따라 유발된 단기적인 교란으로 능히 해석할 수 잇었다.
다윈이 진화의 산증인인 그 유명한 다윈핀치를 처음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도 이런 창조론적 인식 체계의 결과로 보면 잘 설명된다. 14종의 핀치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한 조상 형태로부터 진화했다. 14종의 갈라파고스 핀치들 가운데 일부는 딱히 핀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14종 가운데 네 종은 씨앗을 먹지만 다른 두 종은 선인장의 열매, 과육, 꽃을 먹는다. 일곱 종은 주로 곤충을 먹고 나머지 매우 진기한 한 종은 거의 이파리만 먹는다. 따라서 다윈이 이 핀치들을 보았을 때 이들이 핀치가 아니라 수렵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핀치처럼 보이게 된 새들이라고 속아넘어간 것도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갈라파고스 핀치들을 혼동한 다윈은 이 모든 새들이 매우 가까운 관계이고 하나의 조류 집단에 속하는 이 많은 종들이 서로 다른 섬에서 진화한 결과 생겨났다는 사실을 채집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채집한 조류 표본들에 심벌로 라벨을 붙여놓지 않았고 훗날 마침내 이 특이한 새 집단의 진화적 기원을 짐작했을 때 이 실수를 후회하게 된다. 또한 다윈은 이 새들이 갖고 있는 부리의 크기와 모양이 먹이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이 핀치들을 충분히 관찰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 중요한 통찰은 다윈이 해낸 것으로 잘못 알러져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머무는 동안 부적당한 이론에 갇혀 있었음에도 다윈은 각각의 섬에서 한 종류씩 채집한 네 종류의 흉내지빠귀 표본들이 별개의 종 혹은 뚜렷이 구별되는 변종임을 알아챌 만큼 훌륭한 자연학자였다. 조류학 전문가가 아니었던 다윈은 이런 변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이 네 가지 표본들의 출신지를 기록해두었다. 갈라파고스 제도를 다녀온 지 9개월이 흐른 1837년 7월 다윈은 이 특별한 흉내지빠귀들의 사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갈라파고스땅거북에 대해 취했던 예기를 떠올렸다.(결국 창조론적으로 해석했다. -나안티)

다윈이 비글호 향해의 이 시점에 정통 과학에서 이단적인 과학으로 가는 중요한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이유는 제대로 된 조류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박물관에 소장된 표본들을 통해 특히 조류 전문가들의 판단을 통해 비로소 이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 조류 전문가들은 다윈이 채집한 갈라파고스 분류군들에서 종과 변종들을 결정하는 특징들을 다윈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정보가 없었던 다윈은 돌연종 혹은 아종들을 유발할 수 있다는 그 무렵을 지배하던 창조론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비글호 항해를 마칠 때까지 다윈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구심을 품었든 이런 창조론적 견해는 당시 다윈에게 가장 믿을 만한 입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다윈은 1836년 10월 2일에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세 달 뒤 그는 자신이 채집한 조류 표본을 런던 동물학회의 조류 전문가 존 굴드에게 맡겼다. 이 무렵 세계의 조류에 관한 아름다운 도판이 들어간 책들로 유명해지고 있던 굴드는 다윈의 갈라파고스 표본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채고 비글호 항해의 다른 조류 표본들에 앞서 갈라파고스 표본들을 먼저 분석하고 기재하기 시작했다.
다윈은 1837년 3월 초 케일브리지에서 런던으로 왔을 때 굴드에게 완전한 결과를 보고 받았다. 두 사람이 이 결과를 놓고 자세한 토론을 하고 났을 때 다윈의 인생과 과학적 생각은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굴드는 다윈에게 네 개의 갈라파고스 흉내지빠귀 표본들 가운데 세 개가 독자적인 종이라고 말했다. 과학계에 처음 보고된 종이며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흉내지빠귀와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굴드는 또한 다윈에게 다윈의 표본들 가운데는 13종 혹은 14종의 매우 특이한 핀치들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들 모두는 굴드가 이들을 하나의 새로운 집단으로 분류했을 정도로 유연관계가 매우 가까운 종들이었다.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채집한 육상조류표본 26종 가운데 25종이 조류학적으로 새로운 종이며 갈라파고스 제도에만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은 박물관에 소장된 표본들과 서로 비교해볼 수도 없고 굴드가 이용한 이전에 기재된 종들에 대한 문헌도 볼 수 없었던 다윈으로서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이었다. 굴드의 분류학적 분석 결과 갈라파고스 제도는 돌연 독자적인 창조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다윈은 자신이 이 섬들을 방문하고 있었을 때에는 다른 방식으로 종의 기원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윈은 굴들의 결론에 놀랐던 것 같다. 그는 만일 흉내지빠귀에 대한 굴드의 말이 옳다면 지금까지 개별 종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추정되었던 불변하는 장벽이 갈라파고스 제도의 서로 다른 섬에 격리된 이 새들에 의해 깨지는 것이었다. 지리적 격리를 통한 점진적 진화만이 유일한 설명이 될 수 있었다. 신이 강박증에 걸린 원예가처럼 갈라파고스 제도의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다니면서 똑같은 생태적 지위들을 각기 다르지만 서로 가까운 종들로 채우려는 의도로 변덕스럽게 창조를 했다고 믿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보다 더 복잡한 핀치류의 사례에 대해 굴드는 더 단순하고 더 설득력 있는 흉내지빠귀의 사례를 바탕으로 이 새들이 모두 매우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을 다윈에게 납득시켰다. 그랬을 때 다윈은 이 핀치들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웃날 다윈이 비글호 항해기에서 말했듯이 매우 유연관계가 가까운 하나의 작은 새 집단에 나타나는 이런 구조상의 점진적인 이행과 다양성을 보면 누구라도 이 제도에 살던 소규모의 새들 가운데 한 종이 사로 다른 목적을 위해 변형된 것이라고 상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뒤늦게 갈라파고스 제도의 조류 표본에 섬별로 라벨을 붙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깨달았다. 그러한 증거가 있었다면 왜 그곳에 그렇게 다양한 핀치들이 사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채집물의 결과에 충격을 받고 남아메리카에서 채집한 표본들이 분류학적 해석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지리적 분포에 관한 비슷한 증거들에 깊은 인상을 받은 다윈은 1837년 봄 새로운 탐구에 착수했다. 그것은 진화적 변화뿐 아니라 놀라운 역동성이라는 종의 가장 은밀한 수수깨끼까지도 설명해줄 매커니즘을 찾는 것이었다.

진화적 변화에 대한 수많은 가설들을 탐구하고 폐기하던 중 다윈은 1838년 9월에 우연히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1826년판을 읽게 되었다. 맬서스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연에서 식량 공급은 한정되어 있고 따라서 자손들 대부분은 포식자, 굶주림,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보존하지 못한다. 맬서스의 책을 읽으면서 다윈은 영원한 생존투쟁에서 유익한 장점을 지닌 아주 사소한 변이들이 자연적으로 선택되고 이것이 생존율을 높여 적용 형질들의 증가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가축 육종가들이 가축에서 바람직한 성질들을 선택함으로써 원하는 형질을 얻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윈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러하여 나는 마침내 설명 매커니즘으로 쓸 이론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또한 적응을 (초자연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반해) 자연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윌리엄 패일리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반론을 제기한 것이었다. 다윈은 자연선택이 페일리의 설계자에 해당한다고 보았고 자연선택 과정을 때때로 의인화하기도 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얻은 놀라운 증거로부터 영감을 받고 자연선택이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무장한 다윈은 창조론의 기본 가정들을 재검토하고 전혀 다른 이 두 개의 이론을 바탕으로 예측해낼 수 있는 사실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재검토가 광범위해짐에 따라 그는 창조론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지적 설계론이 눈앞의 증거들과 도저히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실하게 깨달아갔다. 다윈의 이 재평가 작업은 22년 후 <자연선택이라는 수단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그 글 속에서는 -나안티) 진화를 입증하는 논증인 것만큼이나 창조론 특히 지적 설계론의 타당성을 반박하는 논증이었다.

지리적 분포에 대한 증거, 특히 대양의 섬들과 그 섬들이 가장 가까운 대륙과 맺고 있는 생물학적 관계에 대한 증거는 다윈의 논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대양의 섬들이 창조론에 대해 제기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다윈이 그 주제를 논하기까지는 철저히 간과되어왔다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이웃한 아메리카 대륙의 종들이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는 다양한 동식물 종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갈라파고스 제도의 환경 특성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갈라파고스 제도와 가장 가까운 지역의 환경과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 지역은 열대기후이다. 반면 갈라파고스 제도의 가혹한 화산 환경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서쪽으로 640킬로미터쯤 떨어져있는 케이프베르데 제도의 환경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케이플베르데 제도의 동물상과 식물상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종들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종들과 가장 가깝다. 다윈은 이렇게 묻는다. 설계자가 있다면 어째서 거의 똑같은 환경에 살고 있으며 비슷한 생태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종들에 하나는 아프리카산, 다른 하나는 아메리카산이라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창조 도장을 찍어놓았을까? 다윈은 창조론이 옳다면 그러한 두 섬의 종들은 지적 설계의 의해 비슷한 환경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같거나 가까운 관계여야 한다. 하지만 실제 상환은 모든 종이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기존의 견해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반면 진화론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종류의 증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깊숙한 동굴에 사는 시력이 없는 생물들 (...) 그러한 동굴 특유의 서식환경들만큼 서로 비슷한 환경은 있을 수 없다. 이런 동굴들은 온도, 습도, 계절의 변화로부터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런 목적을 수행하지 않는 흔적만 남은 눈을 갖고 있는 눈먼 동굴동물들은 전 세계에 걸쳐 서로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동물들은 그 동굴이 있는 각 대륙의 지표에서 생활하는 생물들과 가장 가깝다. 그러므로 동굴 거주자들은 그러한 지표 거주자들로부터 진화에 의해 갈라진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잔존집단에 관한 사실들은 독립적인 창조와 지적 설계 이론으로는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진화론이 예측하는 사실들과는 참 잘 맞아떨어진다.
갈라파고스 제도와 같은 섬들은 또 다른 종류의 사실들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먼 대양의 섬들이 매우 편향된 동물 분포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섬들에는 대형 육상 포유류뿐만 아니라 양서류도 없다. 하지만 날아서 먼 바다의 섬에 도달할 수 있는 박쥐는 모든 주요한 대양의 섬들에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다윈의 주장에 따르면 그러한 섬들에 양서류와 대형 육상 포유류가 없는 것은 그러한 섬들의 물리적 조건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동물들을 대양의 섬에 들어오면 일반적으로 성가신 존재가 될 정도로 잘 번성한다. 이런 사실들은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으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지만 우연히 실려와 이주했다고 생각하면 완벽하게 설명된다. 다윈이 지적했듯이 양서류와 그 알은 소금뭉에 닿으면 금방 죽는다. 반면 파충류는 먼 대양의 섬들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그것은 파충류가 바라를 건너는 험난한 여행을 훨씬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방문자와 이주자들이 들어온 외래종들이 먼 대양의 섬에서 토착화하기 쉽다는 사실은 다윈에게 설계론의 또 다른 근본적인 약점으로 보였다. 외래 동식물이 유입된 거의 모든 대양의 섬에서 외래종이 토착종을 절멸시켰다.
섬들의 새와 동물들이 지극히 순하다는 사실 -이주자들에게 식량이나 사냥감의 목적으로 쉽게 죽임을 당하는 성향-을 언급하면서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 들어온 맹수는 토착 생물들의 본능이 이 낮선 동물의 기량이나 힘에 적응하기도 전에 한 지역에 엄청난 파괴를 초래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 섬들에 원래부터 살고 있던 토착 동식물 종들이 신에 의해 그곳에 살도록 특별히 설계되었다면, 이들이 외래종보다 더 우세해야 할 것이다.  외래종은 다른 곳에 살도록 설계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외래종이 일관되게 우세함을 보여주는 증거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의 예측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다윈은 주장한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은 오직 지역 군집들 내에서 경쟁하는 생물들에만 적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진화적 과정은 '생존경쟁을 통해 오직 그 지역의 기준에서 완벽하고 힘센 것을 만들어낼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생물들이 사는 먼 대양의 섬들은 본토의 생태 군집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약한 선택에 놓이고 따라서 이 섬의 거주자들은 '일반적으로 더 큰 지역에 살던 거주자들이 들어왔을 때 대게 굴복하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굴복하고 있는 것을 실제로 보고 있다.'
다윈은 자연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설계의 예들을 하나둘 모으면서 진화론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형태학, 분류학, 발생학 같은 여러 생물학 분야에서 가져온 수많은 추가 사례들을 제시했다. 그의 가차없는 비판에 담긴 궁극적 메시지는 간단했다.  즉 종의 기원에 대한 이론은 적응 뿐 아니라 자연에서 자주 발견되는 불완전성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창조론 교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나쁜 설계의 풍부한 증거들이었다.

뻐꾸기 새끼들이 가짜 어미새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떨어트리는 행동이나 자신의 알을 애벌레의 몸에 주입하는 기생형 말벌의 행동(알에서 깨어난 말벌의 유충은 그 애벌레를 산 채로 잡아먹는다)은 특별히 부여되었거나 창조된 본능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보다 모든 생물의 개선을 이끌어내는 한 일반법칙의 사소한 결과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악마의 사제가 아니면 누가 이런 꼴사납고 소모적이며 실수를 연발하는 저속하고 끔직할 정도로 잔혹한 자연의 소행들에 대한 책을 쓸 수 있겠는가!'

최고의 과학은 진정으로 훌륭한 이론을 위해 일한다. 베이컨의 귀납벅 -이른바 사실은 어떤 이론에도 얽메이지 않고 그 자체만을 말한다는 것-이 과학철학을 지배하던 시절에 다윈의 과학적 방법론은 놀랍도록 현대적인 것이었다.

항해를 하는 동안 다윈은 창조론을 따랐다. 운명적인 갈라파고스 방문과 그 밖의 다른 항해 경험들로 그는 창조론이 잘못된 예측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부적절한 채집 방법을 권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사를 좀 더 깊이 할수록 그는 창조론이 눈앞의 생물학적 고생물학적 증거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창조론을 부정했으며 결국에는 더 나은 이론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이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143 페이지 ~ 165 페이지
를 내 마음대로 생략시켜서 타이핑했음.
타이핑만으로도 2시간 반 걸림. 손가락이 굳어간다. 으드드득 으드득.
핑요하시면 복사붙여넣으시라고 타이핑하고 갑니다.

다음에 뵈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6-10 21:50:31 자유토론방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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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라님의 댓글

케일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나는 안티이다님,
글을 몇개로 나눠서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어제 회사에서 읽다가 바뻐서 다 못읽고 집에가서 좀 읽다가 집안일때문에 또 다 못읽고..
지금 또 회사인데 어제 읽던 부분을 다 까먹어서 또 처음부터 읽다가 지금 회사일이 바뻐서 또 나가봐야 되서 안타깝네요!
그러니깐 1부 2부 3부 4부 뭐 이렇게 나눠서 올리시면 읽는 사람들이나 안티이다님께도 더 도움이 될것 같습니당!
하여튼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느라 수고가 많네요!!
emoticon_026
안뇽! ㄴㅇ 아!! 잘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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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안티이다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나는안티이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ㅋㅋㅋ 넵 알겠습니다. 한 페이지 넘어가면 연재글로 다시 옳길게요. ㅋㅋㅋㅋ
오타도 좀 있고 그러네요. 고치고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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