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상에게 알려주는 주기도문
페이지 정보
본문
예수가 가르쳐준 주기도문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예수가 과학지식이 있어, 지구가 둥글고 태양을 돌며,
지구 밖은 대기도 없고, 상상할 수 없이 추운데다
막연한 빈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을까 의문이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 6;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아들인 예수가 아버지라 부르는 신의 호칭은
그 신이 인격을 가진 남성이고, 우주공간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다.
즉 1세기 인간의 지식수준에서 볼 때, 하늘 위 어딘가(궁창)에서 인간들을 내려다보면서
누가 무슨 잘잘못을 하는지 체크해서 상벌을 준다는 뜻을 가진 구절이다.
요즘의 기독교에서는 하늘을 sky가 아닌 heaven이라면서 창조주가 계시는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지구 중심의 우주관을 가진 고대인들이 알고 있던 상식을 현대적으로 비튼 아전인수식 해석에 불과하며,
인격을 가진 남성 신이라는 개념이 이미 무용지물이 됐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구절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나아가 인간이 본인의 이름을 거룩히 생각한다는 사실에 여호와가 기뻐한다는 뜻이 숨어있는 말이다.
전지전능한 자가 자신의 피조물이 자신을 거룩하게 생각한다고 기뻐한다니, 이 신의 수준이 의심스럽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게 ‘주인님 거룩하게 생각합니다’고 입력한 뒤
그 로봇이 말하는 녹음기 소리를 매일 들으면서 기뻐한다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말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나라에 임하라’라는 뜻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나라가 임하라’라는 뜻, 곧 하늘나라가 오라는 뜻이다.
한글은 주어에 받침이 없으면 다음 주격조사는 가이다.
옛날, 문법을 모르는 번역가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것도 역시 하늘과 땅 개념의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거기에 임하는 여호와에 의해 뜻이 이루어진다는 뜻인데,
고대의 의학 지식과 우주관에 현대의 지식을 집어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증거로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눈먼 사람이 보고, 귀 먹은 사람이 듣게 되며, 앉은뱅이가 걷게 된다고
가르치는 장면을 들 수 있다.<눅 7;18~23><이사야 35;5~7>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문맥상으로나 실제 번역을 해도 오늘날이 아니라 오늘이라고 해야 옳다.
‘주옵시고’도 ‘주시옵고’ 라고 해야 ‘주시고’의 겸양어임을 알 수 있다.
전지전능한 이 신은 인간이 기도할 줄도 다 알고, 어떻게 될 줄도 다 아는데,
인간이 기도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해서, 또는 아주 열성적으로 기도하는 것에 감동해서
처음의 계획, 즉 시험에 들게 하려던 계획을 바꾼다는 말인가?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인간으로부터 나라, 권세, 영광을 신이 갖는다고 전능하신 신에게 영광스러울 것이 있는가?
모든 것은 신이 정해 놓은 대로 흘러갈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 부분 (마태 6:13)은 후대의 가필이라는 것을 신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예수가 가르쳐 줬다는 기도문에 인간이 멋대로 가필을 해서, 신의 말씀인 것처럼 바이블에 싣는 것 자체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우리말 속담을 생각나게 한다.
예수의 가르침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인가?
댓글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