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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구원받은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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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경은진실 이름으로 검색
댓글 8건 조회 4,357회 작성일 12-01-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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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된 존재의 궁극적 생명체는 150억 광년의 우주에서 자유로운 활동가

 

이런 생각을 하여 본적이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고 모두가 죽음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죽음 다음에 나의 존재는 어떻게 될까?’ 그 결과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사람의 궁극적 생명체는 150억 광년의 우주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생명체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느낀 이야기를 표현하여 보고자한다.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를 펼쳐보니 외계인에 관한 흥미있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외계인은 지구인과 같이 산소로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암모니아나 메탄으로 호흡할 수도 있을 것이고, 물 대신에 광물을 마시고, 가시 광선 대신에 전자파(21cm파 등)에서 에너지를 흡수한다든가 등등 지구인과는 전혀 다른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이연우 외7명, <고등학교 과학> (서울: 이젠 미디어, 2009), 285))

 

1.1 하나님의 보호 속에 생명이 유지되는 생명체

 

천문학자들은 외계인에 관하여 현재 지구인과는 전혀 다르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추측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인과 전혀 다른 생명체에 관한 현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산소가 없어도 암모니아나 메탄이나 심지어 햇빛을 받으면서 살지 않아도 다른 방법으로 살고 있는 생명체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이 땅에서 예수를 믿어서 구원 얻은 성도들이 장차 지니게 될 생명체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들려주고 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계22:1-5)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 강 좌우에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들, 만국을 치료하는 나무 잎사귀들, 그리고 달마다 열매를 맺고 있는 현상은 시간과 공간이 있는 자연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나 생명으로 충만한 세계이다. 그 세계 속에 장차 우리는 거하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 물이나 산소나 햇빛 등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주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비쳐주는 것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계22:5)

그들에게 비치이는 빛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에게 비치시는 빛이다. 이 빛은 하나님이 영원하심 같이 영원성이 있는 빛이다. 우리는 그 빛 안에 있음으로 영생을 보장받게 된다.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는 핵심이 이 빛을 받고 있는 상태에 있느냐 아니면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 다른 과일나무의 열매를 먹는 일이나 물을 마시는 일 등은 부수적인 것들에 속한다.

그런데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비쳐주는 그 빛은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빛이 아니다. 즉 자연계에 속한 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사탄이란 존재가 천국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고 가정하여 보자. 그에게는 이 빛이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이 빛은 그에게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부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이 빛은 환경적인 빛이 아니라 합당한 존재, 곧 하나님과 연결된 존재에게 비쳐지고 있는 빛에 해당한다. 장차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느 곳에 있던지 공간을 초월해서 이 빛을 받으면서 존재하게 된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라는 말씀은 우리의 존재의 생명력이 등불이나 햇빛처럼 자연계에 지배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물질적 차원을 넘어서는 생명체로 자연계에서도 생활하면서 영생을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존재로 있게 된다.

우리가 150억 광년이 넘는 우주를 왕래하여도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빛은 공간을 뛰어넘어서 우리를 보호하고 생명을 유지시켜주실 것이다. 예수는 말씀하셨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9)

하나님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기에 우리를 대우주의 세계를 초월하여서 영원히 보호하여 주실 분이시다.

성경은 부활한 우리의 육체는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도 들려준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15:42-44)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계21:4)

 

천국에서 있게 될 그리스도인의 생명체의 상태는 우주에서 활동하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생명체에 해당한다. 지금은 우리가 산소로 호흡하면서 살고 있지만 장차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이 비치시는 빛으로 호흡하며 지내며 썩지 아니할 몸, 영광스런 몸, 강한 몸, 신령한 몸, 영의 몸, 죽을 수 없는 몸으로 우주를 왕래하면서 영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산소나 암모니아 혹은 메탄으로 호흡하면서 지내는 존재이라면 우주에서 그런 것이 있는 일부의 지대에서만 생활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비치시는 빛으로 호흡하며 지내는 존재이면 우주에서 생활하는 데에 완전 자유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1.2 벽 통과와 순간이동이 가능한 생명체

 

우리가 우주에서 생활하는 데에 완전히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활동하여 보여주신 몸의 기능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첫째, 예수의 부활한 몸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24:42-43)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자연계에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생선을 잡수셨던 예수는 지구가 아닌 다른 자연계에 있는, 강 좌우에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들
(계22:2)에 있는 열매들도 잡수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8-39)

 

둘째, 예수의 부활한 몸은 문들이 모두 닫혀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냥 벽을 통과하여 방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는 몸이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문들이 닫혀있는데도 방 안에 들어오셔서 가운데 서서 말씀하실 수 있었던 몸은 자연의 법칙 위에서 움직이는 몸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죽을 수 없는 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몸은 자연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지 않은 몸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의 몸은 이제는 십자가에 달려놓아도 그냥 통과하여 나올 수 있고 태양 속을 지나가도 타지 않고 그냥 통과하여 나올 수 있는 몸이다. 그런 몸은 블랙홀 속에 집어넣어도 그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예수의 부활한 몸은 순간이동이 가능한 몸이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눅24:30-31)

 

예수의 몸은 떡을 떼어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눈 앞에 있다가도 순식간에 이동되어 볼 수 없게 되는 몸이기도 하였다. 떡을 떼어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었다는 것은 자연계에서 생활할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이다.

우주는 자연계이다. 그 몸이 순간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주적으로도 활동이 가능한 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주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몸은 죽을 수 없고 순간 이동, 그리고 벽 통과가 가능한 몸이어야 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의 몸의 기능을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장차 구원 얻은 성도들도 그런 몸을 가지고 있게 된다고 들려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0-21)

 

우리는 현재 낮은 몸으로 생활하고 있다. 미래의 우리의 몸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영광스런 몸이 된다. 그 몸은 자연계에서 생활할 수 있는 몸이고 영생하는 몸이며 벽도 그냥 통과할 수 있는 몸이고 순간이동도 가능한 몸이다.

 

이런 몸은 우주에서 생활하는 데에 아주 적합한 몸이라고 볼 수 있다.

지구에서 성경을 제외한 어느 책에도 이렇게 우주적으로 적합한 생명체를 소개한 책은 없다.

하나님은 지구의 생활이 끝난 다음에는 부활하신 예수와 같은 기능을 지닌 생명체를 우리에게 허락하여주신다. 당신은 예수 안에서 소망이 있다.

 

1.3 사랑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생명체

 

사람은 산소를 떠나면 곧 죽게 된다. 장차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활하는 존재가 하나님을 거부할 경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은 그에게 차단될 것이며 그는 곧 죽음이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들려주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지금은 우리가 산소 귀한 줄은 알아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귀중하다는 것을 모르고 지낼 수 있어도 영원한 세계에서는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가장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 때에는 등불과 햇빛은 쓸 데 없을 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취시는 것은 우리의 생명에 절대로 필요하다. 낮은 몸, 육의 몸, 약한 몸, 욕된 몸은 등불과 햇빛과 산소가 필요하여도, 영광스런 몸, 신령한 몸, 영의 몸은 하나님 자신이 비치시는 생명의 빛이 필요하다. 생명의 빛은 사랑의 빛이다.

 

존재적으로 보았을 때에 진정한 사랑은 이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욱 크고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이 세상의 사랑은 나의 존재의 대용품이 사랑 받고 있는 세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존재 그 자체가 사랑 받고 있는 세계이다.

우리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방면에서 나의 솜씨나 능력을 발휘하면서 그것이 사랑받으면 흐뭇하게 여긴다. 우리의 세계는 음악가라는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음악가의 솜씨와 능력을 사랑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음악가의 솜씨나 능력보다 음악가라는 그 존재 자체를 더욱 사랑하는 세계이다.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피조물이란 존재를 사랑하며 피조물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솜씨나 능력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욱 사랑하며 있게 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우리가 하나님이란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가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영생이란 문제는 우리의 존재적인 문제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시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도록 허락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 존재의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서 영생의 문제까지 해결하여 주신다.

영생의 문제는 음악가가 음악을 잘 하는 문제나 미술가가 그림을 잘 그리는 문제나 정치가가 정치를 잘 하는 문제보다 더욱 귀중한 문제이다. 인간이 관심을 두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자신의 존재의 대용품들이 잘 되는 문제에 평생동안 관심을 기우린다. 그러다가 육체가 죽을 때가 되면 허무감 속에 있게 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든지 상관이 없고 될대로 되라는 듯이 취급한다. 이것은 큰 비극이다. 자신의 존재의 알맹이는 돌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돌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우주에서 활동하기에 부적합한 몸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존재의 몸은 궁극적으로 우주에서 활동하기에 아주 적합한 몸이 된다. 그 몸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보호 속에 있게 되며 공간세계를 자유롭게 통과하고 순간이동도 가능하다. 영원히 죽을 수 없다.

특히 그 생명체는 사랑으로 생명력이 유지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이것은 그 생명체가 그 내부 중심에서 항상 기쁨과 평안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기쁨과 평안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현재 인간의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과 반대가 되는 현상이다. 인간은 기쁜 척, 즐거운 척 외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내부 중심에는 존재적으로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하여 자기 상실상태에 있기 있다. 그래서 늘 어둠, 슬픔, 불안 그리고 영혼의 갈증이 계속하여 연기 구름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상태에 있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기쁨을 일시적이라도 주는 일들에 몰입하게 된다. 마치 배고픈 아이가 젖 달라고 아우성치듯이 영혼에서는 만족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상황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일에 몰입하지 않으면 뭔가 자신을 잃어버린 듯이 허전하게 되기도 하고, 음악, 스포츠, 건전한 오락, 부귀, 명예, 권세, 인기 등등에 마음을 주면서 기쁨의 물을 외부로부터 빨아들이기 위하여 애를 쓴다. 이런 현상에 잘못 대응하게 되면 도박이나 음란, 술취함 속으로 빠져들게 되기도 한다. 전세계적으로 향락산업만 해도 한 해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2:13)

 

우리는 일시적인 삶을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 이 세상에서는 지구를 벗어나서 살지 못하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우주적으로 살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에서는 인간 존재의 대용품을 만들어놓고 그것들이 잘 되는 것이 바로 내가 잘되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게 되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바로 나의 존재가 나를 만드신 창조자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살게 되고 이웃도 나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는 바탕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지내게 된다.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회는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체제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존재를 사랑하고 있는 체제의 세계는 나의 대용품이 사랑을 받고 있는 세계처럼 남을 눌러야 내가 각광을 받는 경쟁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지 아니할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의 체제가 다르듯이 장차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 나라의 체제는 이 세상의 체제와 많이 다를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사실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존재들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 이야기는 결국 사랑이야기이다. 예수는 창조주이시지만 피조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랑받자고 아우성치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사랑 가운데 있지 아니하면 살고 싶은 마음도 상실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생명체가 사랑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생명체로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사랑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장차 우리는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음 같이 진실한 사랑의 빛을 받지 않고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의 영원한 생명체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계22:5)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죽은 다음에 ‘빛의 존재’를 만난다는 보고가 있다. 그리고 사랑과 평안의 분위기에 있게 된다고 한다.((어윈 루처/ 장미숙 옮김, <당신이 죽은 1분후에> (서울: 도서출판 디모데, 2005), 22-23)) 이런 내용들은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는 성경 말씀과 일치하다고 볼 수 있다.

 

2. 구원된 존재의 가치

 

라엘리언 무브먼트 창시자 클로드 라엘은 우주인들이 나타나서 광속의 10배 이상 빠른 UFO로 그를 그들의 혹성으로 데려가서 지구보다 2만5천년이나 앞선 과학문명을 체험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우주인들은 앞으로 인류가 그들을 진정으로 맞이한다면 그들은 2만5천년 앞선 과학기술을 전수해 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라엘리안 무브먼트 광고지)

 

이런 이야기는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배치된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 생물들을 종류대로 각각 만들어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종류의 생물들은 자기 자신의 한계가 있고 그 한계 속에서 살아야 합당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과학제품들을 각 종류대로 만들어놓고 그것들은 각각 인간이 정해준 한계 속에 있게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동차가 나타나서 자전거에게 “나에게는 너보다 더욱 큰 성능이 있는데 네가 내게 잘하면 내가 네게 그것을 전수하여 주겠다”고 말할 수 없다. 비행기가 나타나서 자동차에게 “나에게는 너보다 더욱 큰 성능이 있는데 네가 내게 잘하면 내가 네게 그것을 전수하여 주겠다”고 말할 수 없다.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는 각각 인간이 그들에게 정하여준 한계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 인간은 원숭이보다 발달된 문명 속에서 있다. 우리가 아무리 원숭이에게 우리의 놀라운 과학기술을 전수하여 주고 싶어도 원숭이는 그것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 피조물은 하나님이 그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 주셨느냐 에 따라서 각기 그 사고 능력과 활동 영역이 다른 상태에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소로 만들어놓으셨다면 우리가 아무리 사람처럼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도 불가능한 것이다. 비행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소는 그것을 만드는 기술을 수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별들을 만드는 기술이 하나님의 세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별들을 만드는 기술을 수용할 수 없어서 진화론 또는 빅뱅같은 이론을 추측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꽃으로 만들어놓으셨으면 우리는 활동도 못하는 존재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제비로 만들어놓으셨으면 가을이 되면 우리는 바다를 건너서 강남으로 날아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참새로 만들어놓으셨으면 강남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각 생물들은 하나님께서 그 한계를 정하여 주신 수준에서 생활하여야 한다.

 

인간이 외계인으로부터 2만5천년 앞선 과학기술을 전수받는 것보다 더욱 귀중한 것은 존재의 문제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사로 만들어놓으셨으면 우리는 천사의 활동을 할 수 있다. 성경은 예수를 믿어서 구원 얻은 존재는 장차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지닌 존재가 된다고 한다. 이것은 엄청나게 귀중한 일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존재의 실체는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그는 우주에 있는 어느 외계인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피조물이다. 그는 천사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피조물이다.

 

천사에게는 하나님의 상속이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상속을 받는다. 예수는 우리를 그의 십자가에서 지구인도 아니고, 우주인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고. 그보다 더욱 높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지닌 피조물로 구원시켜주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일시적인 생명체는 인간이지만 우리의 영원한 생명체는 우주에 있는 어느 외계인들보다 높은 종류에 해당하는 존재로 있게 된다는 것을 들려주고 있다.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22:5).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6-17).

 

당신은 장차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부분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당신은 죽을 수 없는 육체를 지니고 순간이동도 가능하며 150억 광년이 넘는 우주의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구원 받은 존재들이 장차 우주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지낸다는 것은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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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님의 댓글

no_profile 그레이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예 정줄을 놓으셨구만.
'지구인과는 전혀 다른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는 가능성의 제시만으로 얼토당토 않은 예수 구라나 치는 꼴이라니.
그런걸 의학 용어로 '종교망상'이라고 하는 겁니다.emoticon_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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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위거님의 댓글

no_profile 안티위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진실이//어쩔???emoticon_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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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님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미친넘이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ㅋㅋ

150억 광년이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듣고는 아무데나 끼워넣고...
아주 쑈를 해라.....emoticon_001

150억 광년이 뭔말인지나 알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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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진실님의 댓글의 댓글

성경은진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150억 광년이 뭘까?emoticon_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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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바이블을 기준으로 보면,
잘해야  6~7000광년 정도만 있어야 하는걸 아는지..

니 스스로 바이블이 구라임을 인정하는거야..!!!

emoticon_001emoticon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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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진실님의 댓글의 댓글

성경은진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님이 이렇게 보는 근거를 바이블로 증명하여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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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보다 더 열심히 바이블 들여다 본 개독의 주장이다..^^

공부 좀 하고 살아라..

17세기 어셔 주교가 바이블의 족보를 기준으로 창세기의 날자를 6000년전 으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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