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라경은 언제, 어떻게 쓰여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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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라경은 언제, 어떻게 쓰여졌는가?
325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구라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에는,
신약구라경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격상되어 기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은
모두 4세기 때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개독교를 최초로 로마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교의
영세를 받게 됨으로써
종교를 바꾼 사람이다.
서기 313년, 그는 개독교를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하였다.
그래서, 초기의 개독교와 구라경의 내용은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 신앙의 교리나 관습 등을 대부분 모방하거나
그대로 수용하였고,
유대 민족의 유대교, 이집트의 호루스(Horus), 토속종교 파간(pagan),
인도의 크리슈나(Krishna), 가나안, 시리아, 고대 희랍, 메소포타미아
등등의 신화를 모방하여 기록하였다.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구라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배당에 속해야 하며, 모든 구라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구라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구라경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구라경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구라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개독교에서는
인간의 역사를 6,000년으로 못 박아 놓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구라경은 가르친다. ‘유대인 신화’를 모방해서 기록한 것인데,
남자 아담(Adam)의 갈빗대를 취해 여자 이브(Eve)를 창조 했다는
대목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거짓말일 것이다.
6,000년 전의 아담과 이브를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사실과 크게 다르다. 아담(Adam)과 이브(Eve)는
6,000년 전의 역사 인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 살 때, 에덴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구라경의 창세기
(4:14-15)에 나온다.
아담과 이브가 최초의 인간이라는 구라경의 내용과 서로 모순(矛盾)된다.
인류 고고학과 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인간의 유물 및
기록들을 증명해 보여 주고 있다.
개독교박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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